달러 빼고 거래하자는 말에 인도네시아 의원들이 박수친 이유

by 김외현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조회 352026-01-26

지난 1월 14일 오후 인도네시아 의회. 금융과 재정 분야를 담당하는 하원 재정위원회(제11위원회) 소속 의원들 앞에 선 한국 기업인 최원석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무역 거래가 연간 20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결제 대금에는 항상 달러가 끼어 있습니다. 이중으로 수수료를 부담하게 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달러 없이 루피아 스테이블코인,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직접 거래하는 겁니다.”


회의실에 있던 의원들이 그 즉시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원내 모든 정당의 소속의원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그들은 한국 기업인의 말에서 자신들이 오래 품어온 고민의 해답을, 그리고 국제적 동지의식을 맛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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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스테이블코인이 독점하면, 우리 유동성이 미국으로 빠져나간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달러 없는 거래 시스템을 나름대로 추진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이 개발한 QRIS(QR결제 시스템)는 이미 일본, 중국, 태국과 연동되어 실제 거래에 사용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대만과도 연결이 진행 중이다. 경제기획원(Bapenas) 관계자는 2025년부터 중국, 일본, 한국과 크로스보더 결제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은 샌드박스 단계, 일본은 이미 시행 단계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문제의식은 다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하산 파우지 수석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민간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CBDC를 함께 도입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부터 통화주권을 지키려 한다고 설명했더니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USDT나 USDC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독점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유동성이 전부 미국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의 루피아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행동으로 옮겨진 단계였다. OJK에 등록된 스테이블코인 샌드박스 프로젝트 3건 중 1건(IDRP)이 졸업을 앞두고 있다. 샌드박스 졸업은 OJK에 관련 법규 제정 의무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금명 간에 인도네시아에서 루피아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파우지 수석위원은 덧붙였다. “우리도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다만 핵심은 유틸리티(utility)입니다. 실제 사용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겁니다.”


‘실제 사용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그걸 어디에 쓰냐, 누가 쓰겠냐, 경쟁이 되겠냐 하며 한탄할 일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한다.


결제는 안 된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인도네시아 암호화폐 시장을 간략한 숫자로 표현해보자. 이용자 1950만 명, 허가 거래소 29개, 글로벌 암호화폐 채택 지수 7위 등 놀라운 규모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5년 1월 암호화폐 관할권을 무역부에서 금융감독청(OJK)으로 이전하며 본격적인 제도화에 나선 상태다.

 지금까지 자리를 잡은 큰 뼈대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거래소-청산기관-예탁기관을 분리하는 중앙집중식 시장 인프라다. 고객의 법정화폐는 청산기관이, 암호화폐는 예탁기관이 관리한다. 거래소는 고객 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는다. 파우지 수석위원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둘째, 암호화폐를 결제 목적으로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방침이다. 결제에 사용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는다. 디지털자산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통화주권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현지에서 만난 당국자들은 암호화폐는 자산일뿐, 결제는 법정화폐로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보면, 암호화폐,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쓸 수 있는 곳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현지 업계 자율규제기구인 블록체인협회(ABI)의 관계자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payment)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국가 간 정산(settlement)은 가능합니다.” 현지 거래소를 운영하는 기업인은 “글로벌 송금 업체들이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국가 간 정산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도네시아 무역에서 원화·루피아 스테이블코인이 USDT보다 유리할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이 협회는 한국 측에 ‘양국 무역 결제 비용 절감을 위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소규모 파일럿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양국 정부 설득 자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쓰나미가 밀려올 때 무엇을 지을 것인가


인도네시아 의회 초청으로 현지를 방문한 민병덕 의원은 OJK와의 만남에서 “결제 수단으로서의 스테이블코인은 한 나라가 거부한다 해도 쓰나미처럼 전 세계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쓸려갑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됐다. 월마트,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기업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들고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릴 날이 머지않았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억 8천만 인구의 인도네시아도, 중국과 국경을 맞댄 베트남도, 금융허브를 꿈꾸는 싱가포르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통화주권은 스테이블코인을 억제한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화된 스테이블코인을 조속히 도입하고, 그 구조를 직접 설계해야 지킬 수 있다.


자카르타 하원에서 터진 박수는 단순한 환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의 문제의식에 대한 공명이었고, 협력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런 반응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 인도네시아 한곳 뿐일까. 달러 스테이블코인 쓰나미에도 버틸 수 있는 시스템과 구조를 앞장서서 고민하고 실제로 튼튼한 설계와 시공을 마친 나라라면, 이럴 때 먼저 손을 내밀며 국제협력을 주도하기도 참 좋을 것이다.


※필자는 1월 13~16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투자부, 금융감독청(OJK), 경제기획원(Bapenas), 하원 제11위원회, 블록체인협회(ABI)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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